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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에는 세 등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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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5.21  10:5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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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 성리학자 이종학이 쓴
상산록에 따르면 청렴에는 세 등급이 있다 한다.
 
최상의 등급은 녹봉 외에 아무것도 갖지 않고, 남는 것이 있어도 가져가지 않으며,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는 말 한 필을 타고 지닌 것 없이 숙연히 떠나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옛날의 염리(廉吏, 청렴한 관리)”이다.
 
그 다음은 봉급 외에 명분이 바른 것은 갖고 바르지 않은 것은 갖지 않으며, 남은 것을 집으로 보내는 이른바 중고시대의 염리이다. 최하위 등급은 이미 규례(規例)가 된 것은 다소 명분이 부족해도 갖되 관직이나 재물을 훔치거나 팔지 않으며, 중간에 착복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오늘날의 염리이다.
 
청렴의 난이도를 따라 세분화했을 정도로 문명사회가 도래하고 관료조직이 생겨난 이후로 공직자와 청렴은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왔다. 그러면 현재 살아가는 우리시대의 많은 공직자들도 알아둘만 한 청백리로 조선시대 최부와 송흠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최부는 조선 초 나주에서 태어나 많은 제자를 길러낸 뛰어난 학자이자, 사헌부 감찰, 사간원 사간 등의 고위직을 지낸 관료였다. 연산군의 패정을 비판하고 벼슬아치들의 비행을 꾸짖었던 탓에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함경도 단천으로 귀양 가고 그곳에서 갑자사화를 맞아 51세에 세상을 떠난 강직하고 청렴한 관리였다.
 
한편 송흠은 영광 출신으로 승문원에서 벼슬을 시작했으나 연산군 학정에 못 이겨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후학을 가르치는데 전념했다. 중종반정 이후 벼슬길이 다시 열려 전라감사, 이조판서, 병조판서에 오르고 우참찬과 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 둘은 서로 가까운 사이였다.
 
송흠이 벼슬살이 초년에 말을 타고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온 때 마침 이웃 고을에 최부가 귀향해 있음을 안 송흠이 말을 타고 찾았다.
 
후배를 반갑게 맞이한 최부는 물었다. ‘서울에서 고향까지 어떻게 왔느냐?’송흠은나라에서 휴가차 오는 관리에게 내주는 말을 타고 왔습니다라 했다. ‘그렇다면 자네 집에서 우리집까지는 어떤 말을 타고 왔느냐고 묻자, ‘같은 말을 타고 왔습니다고 답했다
 
그러자 최부는 버럭 화를 내며, 공무로 왔으니 서울에서 고향까지는 괜찮으나, 여기는 사적으로 온 것인데 왜 나라의 말을 타고 왔느냐고 엄히 꾸짖었다.
 
최부는 끝내 나라에 고발하여 송흠이 처벌을 받게 하였지만, 송흠은 그 때의 충고를 거울삼아 공사를 명확하게 구별하는 청백리가 되어 후세에 이름을 날리게 되었던 것이다.
 
처음 시작한 벼슬살이에 철저히 버릇을 들이도록 큰 훈계를 준 최부의 청백이나, 그 훈계를 받아 원망 않고 끝까지 모범으로 삼아 세상에 이름 높은 청백리가 된 송흠의 청렴정신은 21세기의 공직자인 우리도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라 여겨진다.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많은 이들이 부패와의 싸움을 계속했지만 처절한 패배로 끝났던 사례가 많이 있다.
 
그럼에도 인류가 망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부패한 세상에서도 청백리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부패의 둑을 막고 깨끗한 공직사회가 되도록 노력을 경주해왔다는 것이다.
 
부패와 타락이 만연했던 시기에도 몇몇 탁월한 청백리들은 강인한 인내와 절제력으로 부패의 사슬을 끊으려는 높은 청렴정신을 발휘해주었다.
 
, 이제 우리는 어떤염리가 될 것인가? 청렴의 수많은 계단에서 최소한 아래쪽은 내려다보지 말고 최상급의 염리를 향해 나아가는 길을 택해야지 않겠는가? 최종의 결과는 각자의 손에, 하루하루의 아주 사소한 선택에 달렸다.
/국립임실호국원운영지원팀장 전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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