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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부천지역 법률재능 기부 법조인…박태승 변호사
장효남 기자  |  woorij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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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1.22  0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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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효남 기자] 인생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살아가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제 욕심을 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는 반대로 자기욕심을 더 충족시키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고 또한 그것을 당연히 하는 것이 지금 세상 모습이다. 그러다보니 많은 법률적 지식이 필요하게 되었고 뒤따라 법률적 서비스 수요가 커져가는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진지도 그리 멀리 오지 않았는데 이젠 “있는 자”만의 세상이라는 자조적 이야기가 주위에서 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세상은 이러한 차가운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닌 따뜻한 면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기사 이곳저곳을 뒤져보니 박태승 변호사(이하 박 변호사)을 알게 되었다.

박 변호사는 여유가 없어 법률적 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수 없는 그런 이를 위해 헌신하고 계신 변호사다. 40대 초반의 로펌 변호사이지만 국선변호사 업무로 잔뼈가 굵었고 모 유력일간지를 통해 관련 내용으로 수상경력도 있는 인물이다. 사전에 지인을 통해 수차의 취재를 요청, 드디어 박 변호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 박태승 변호사.                        ⓒ 장효남기자

- 우선 변호사가 되신 동기는 무엇인지요.

제가 자란 곳은 경남 남해입니다. 그곳은 아시다시피 사방이 바닷가인 지역이라서 입신을 하려면 서울로 올라가 대학을 다녀야 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라서 경영대나 법대를 진학할 생각으로 공부를 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1990년 건국대학교 법대에 진학하게 되었죠.

일반인들은 법대에 진학하면 무조건 사법시험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런 생각을 하고 법대에 간 것은 아닙니다. 법대를 졸업하면 일반 직장인이나 공무원 등 다양한 직업에 나서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입학을 했고 1학년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그래서 사시도 2학년이 되서야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재학 중 사시에 불합격해 대학졸업 후 곧바로 군대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배치된 곳이 다행이도 군법무관실이라 법률적 사고를 계속해서 가질 수 있었고 제대 후 사법시험 42회에 합격해 2년간의 연수원시절을 거쳐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저에게 동기를 물어 보셨는데 대학 1학년 때까지는 변호사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학교를 다니면서 교내에 사시합격 현수막을 보고 그것에 자극을 받게 되었고 또한 교내 고시준비생들에게 학교에서 경제적 지원을 해주니 도전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어떤 생각을 하고 변호사가 된 것은 아닙니다.

- 부천에서 개업하게 되셨는지요. 그리고 국선변호사로 유명하게 되신 계기는 무엇인지요.

처음 변호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때 서울보다는 수도권 지역으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서울 지역은 변호사 수요보다 공급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 생각을 한 후 곧바로 부천에 있는 법무법인 율곡에 전화를 걸어 로펌 입사를 문의하게 되었고 일사천리로 그곳에서 첫 업무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후 군대에서 알게 된 법무관님으로부터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아 로펌 서우를 서울 용산 국방부 인근과 이곳 부천에서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술한 책이 『국가유공자 클리닉』 이라는 공저인데 군인들의 공상과 관련된 법률 수요에 맞추어 제작된 책입니다. 지금도 많이들 본다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대학 동기들 셋이서 '로펌 이루'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부천에 온 것도 그저 단순하게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국선변호사로 오랫동안 지낸 것은 처음 이곳에 와 내 자신이 부천지역에 어떻게 하면 변호사로서 성공할 수 있는지 생각한 후 국선변호사로 활동 한 것이 아니라 이 지역 자체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이보다는 어려운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을 뿌리치지 못했고 그들에게 최선을 다해 법률서비스를 했을 뿐인데 어찌하다보니 그런 사람으로 알려지게 되어 상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음지에서 저 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오랫동안 봉사하시는 선배 변호사들이 많은 데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런 상을 받았다고 해서 시민운동가도 아니고 그냥 인간으로서 할 도리를 했을 뿐입니다.

이제는 애들도 서서히 자라고 해서 더 이상 봉사라는 개념의 서비스는 점차 줄일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진짜 제가 필요로 하면 다시 나설 생각 입니다.

-  예비법조인들과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법무법인 이루 사무실 전경                                            ⓒ 장효남 기자
                                  
요즘 법조인이 되겠다는 사시준비생들 또는 로스쿨학생들에게 별 다른 이야기가 있겠습니까. 다만 법조인은 금전이라는 부문을 수단으로 생각해야지 목적으로 하면 절대 안 됩니다. 그게 자기를 옥죄일뿐더러 사회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철학과 소신을 갖는 법조인이 되어 사회의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곳을 방문하여 법률서비스를 요청하는 고객들이 있는데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곳에 올 필요가 없는데도 일부러 오시어 일을 확대 시키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면 될 일까지 법원으로 가서 결국엔 금전적 낭비에 사회적 낭비를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와서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역지사지의 생각을 가지고 소송으로 가지 말고 서로 간 원만하게 해결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큰 돈 안들이고 법률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예를 들면 계약서 작성의 경우 '사후약방문'식의 일처리로 인해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보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이럴 경우 계약서 작성 시 변호사와 상의하면 사후에 손해를 볼일이 거의 없으니 이런 점 미리 알아 놓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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